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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정보/르와르 고성

천재 '다 빈치'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끌로 뤼쎄 Château du Clos Lucé

by 알고가자 2020. 2. 18.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에서 마지막 3년을 살았던 '끌로 뤼쎄'에서 500년 전 천재의 영감을 만나보시지요~~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앙브와즈 성에서 500 미터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적한 시골 풍경과 절벽을 파고 집을 지은 '동굴 집 troglodyte'을 감상하며 걷노라면, 프랑스에 르네상스 문화를 전파해준 레오나르도 다빈치 Léonard de Vinci’가 생애 마지막 3년을 살았던 끌로 뤼쎄에 다다른다.

평생에 걸쳐 물리학, 역학, 광학, 천문학, 지리학, 해부학, 기계 공학, 식물학, 지질학, 토목공학 등의 분야에 지칠 줄 모르는 연구와 업적을 남기었고, 철학과 예술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다빈치의 능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500년 전의 천재와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보자!

국왕 루이 11세의 집사였던 에티엔 르 루 Estienne Le Loup’ 12세기 초에 초석을 쌓고 1471년에 완공된다. 저택은 직각의 2층으로 건축된 두개의 건물을 감싸고 있는 나선형 계단의 팔각형 탑을 중심으로 지어졌으며, 우아한 건물 외관을 지닌 성은 15세기 건축양식의 붉은 벽돌과 석회암으로 건축되었다.

방대한 공원과 녹지에 자리하고 있는 끌로 뤼쎄 성은 프랑스와 1세가 살았던 앙브와즈 성에서 400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프랑스와 1세가 누이 마흐거리트 드 나바흐 Marguerite de Navard’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왕의 초대를 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1516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둔 1519년까지 3년동안 거주하며 작품에 전념하였던 곳이다.

프랑스와 1세와 다빈치

1515년 왕좌에 오르자마자 이탈리아 정복을 꿈꾸며 원정을 갔던 프랑스와 1 François 1’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강렬한 인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을 듣고 프랑스로 초청한다. 1516 5 64세의 노령인 다빈치는 수제자 멜지 Francesco de Melzi’, 충복 살라이 Salaï’와 하녀 마튀린느 Mathurine’를 대동하고 당시 프랑스와 1가 살던 앙브와즈 Amboise’에 도착한다.

당시 20세의 젊은 프랑스와 1는 왕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으며, 특히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끌로 뤼쎄를 다빈치에게 하사하고 충분한 연급을 지급하여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5세에 아버지를 여윈 왕은 다빈치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르며, 누이 마흐가렛트 Marguerite de Navarre’와 함께 지하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자주 방문하였단다. 아쉽게도 지하통로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래오나르도 다빈치는 화려한 축제를 프랑스 왕정에 전해주었으며, 왕의 어머니 루이즈 드 사부와 Louise de Savoie’를 위하여 호모랑땡 Romorantin’의 성을 직접 설계하기도 하였다.

왕에게 상납한 세 점의 작품 < 모나리자 Joconde >, < 성녀 안나와 성모자 Sainte Anne et la Vierge > 다빈치 끌로 뤼쎄에서 완성하는 < 세례 요한 Saint Jean Baptiste >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다빈치의 영향

다빈치는 천재성을 발휘하여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한 파티를 왕궁에 소개를 하였고, 볼품없던 '앙브와즈 성'을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탈바꿈시키고, 이탈리아 양식의 정원을 보급하고, 궁정 예절과 과학을 전해주었으며, 왕의 어머니를 위한 호모랑탱 Romarantin’ 성을 설계하여 르와르 지역의 고성들과 건축, 토목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호모랑땡' 고성은 공사를 시작도 못하였고, 다빈치 사후 1519 샹보흐 성 Château de Chambord’을 건설하면서, 성 내부의 이중 계단 구조는 다빈치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다빈치 3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자신의 평생 연구를 정리하여 1519 4 23일 모든 서류와 수기들은 제자인 멜치에게 남기고, 그의 재산은 충실한 하인과 하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고 유언장을 작성하고, 1519 5 2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끌로 뤼쎄의 역사

루이 11세의 호위병이던 '에스티엔 르 루 Estienne le Loup'에 의하여 12세기부터 시작된 성은 1471년에 완성된다. 저택은 직각의 2층으로 건축된 두 개의 건물을 감싸고 있는 나선형 계단의 팔각형 탑을 중심으로 지어졌으며, 우아한 건물외관을 지니 성은 15세기 건추구양식의 붉은 벽돌과 백토암으로 건축되었다.

1490 7 2 '샤흘르 8 Charle VIII'가 금화 3,500 에 구입하여 왕실의 사적인 별장으로 사용한다. 특히, 아이들을 병으로 일찍 잃은 '안 드 브르따뉴 Anne de bretagne' 왕비가 슬픔을 달래고자 자주 찾아 기도를 드리던 성당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