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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정보/일 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원조 모델 '보 르 비콩트'

by 알고가자 2020. 3. 9.

프랑스 여행 중에 꼭 들리는 베르사유 궁전이 보-르-비콩트성의 모조품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보 르 비콩트 성은 베르사이유 궁전 못지 않은 프랑스 역사의 현장으로, 독특한 역사와 에피소드를 통하여, 루이14세가 군림했던 시대의 뒤안길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루이 14세가 질투를 느꼈을 만큼, 재력과 권력을 지녔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guet, 1615-1680)의 흥망성쇠는 보 르 비콩트 성에서 시작, 보 르 비콩트 성에서 끝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 Nicolas Fouquet (1615-1680) 의 성공

예술분야에도 놀라운 감각과 식견을 지니고 있던 니꼴라 푸케는 1656 년 당대의 유명한 3명의 예술가를 건축가 Louis Le Vau, 화가 Charles Le Brun, 정원 계획가 Andr   Le Notre를 초대하여6000 ha의 늪지대와 3개의 부락을, 1 5천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5년만에 사치스러우면서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이 자리한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17세기의 문화를 대표하는 작가, 조각가, 화가, 음악가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그들이 성에 거주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 루이 14세의 분노

1661 8 17일 퐁텐블로성에 거주하던 젊은 루이 14세를 초대하여, 집들이겸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성을 관리하던 총지배인 Vatel, 왕을 자극할 정도로  432개의 순금 접시와 잔으로 식사를 준비하였고정원에서는 여흥과 오락이 펼쳐지는데, 1200개의 음악분수를 비롯하여여흥의 절정은 Moliere의 단원들이 초록의 극장에서프랑스 예술사에 기록되는 유명한 코미디물인 Les Facheux (귀찮은 사람들)을 처음으로 공연한다.

La Fontaine Vaux의 요정들을 노래하였고, 운하에서는 수상 창시합, 전원의 발레, 불꽃놀이 등이 펼쳐졌다. 그 당시 베르사이유에 초라한 사냥 집만을 갖고 있던 루이 14세는, 휘황 찬란하고도 요란함에 약이 올랐다. 푸케의 성은 루이 14세가 보지 못했던 가장 아름다운 성이었으며궁정의 향연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축제를 베푸는 것에, 만찬 주인공인 루이 14세의 노여움을 사고 만다.

원래는그의 취향대로 장식된 침실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었지만약이 올라 퐁텐블로성으로 돌아간 다음날로 총감독 Fouquet 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3주 후에 달타냥 D'artagnan 에 의해 체포되어 3년간의 긴 소송 끝에 추방령을 당했고왕이 종신형으로 감형하여 감옥에 투옥케 하고, 전재산을 몰수 하였다.

루이 14세는 푸케의 성보다 더 크고 멋있는 성을 지으라며Le Vau, Le Brun, Le Notre 를 소환하여 루이 14세의 권력과 부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을 만든다젊은 루이는, 음악분수, 연극, 수상놀이 및 불꽃놀이의 화려함과 재미에 깊은 인상을 받고,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일상화 시킨다.